지난 일에 대해 기록을 근거로 반박을 해 상대를 놀래키곤 한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먼저 놀라고 그런 것을 일일이 기록해 둔다는 것에 다시 놀란다. 메모 왜 하는지, 혹은 왜 안하는지 그리고 모바일 메모앱들이 갖춰야 할 덕목들을 생각해봤다.
요즘 사람들의 메모
메모하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 넷상에서도 인기 없는 키워드이다. 기록에 집착해온 나는 여러번 ‘메모’를 주제로 블로그나 유튜브를 만들어 볼 생각을 했었다. 인터넷에 일기같은 글을 적지 말라는 경고와 자각으로 사람들이 메모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검색해보곤 했었다. 나오는게 별로 없었다. 아무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시시한 인물처럼 쓸쓸한 결과였다. 이 키워드에서 그나마 사람들이 찾아보는 부류는 스마트폰의 메모앱에 대한 질문 같은 것들이었다. 과거에 수첩을 들고 다녔던것보다 더 열심히 스마트폰을 상시 지참하고 지내는 요즘에 와서 기록과 정보는 폰을 위주로 이루어지는게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도 같다. 하지만 실상은 좀 다른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 근거로 현재도 문구점의 한 섹션을 빽빽하게 매우고 있는 수많은 수첩과 노트들이 있다. 사람들은 현재도 많은 글들을 쓰고 있다. 일상적으로나 업무에 있어서도. 아마도 요즘은 기록의 필요성이 커지는 요소와, 반대의 요소가 혼재된 상황일 것이다.
메모는 왜 하는가
잊지 않으려고 한다. 이게 가장 기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과거보다 더 메모가 필요한 시대이다. 세상이 복잡해졌으니까. 그런데, 정말 메모는 왜 할까? 메모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시작은 뭐였을까? 머리가 커가던 시기에 시작된 것 같다. 중학교 때였는데 쉴새 없이 여러가지 새로운 생각이 떠올라서 잊어버릴까봐 얼른 적어놓곤 하던게 시작이었다. 그 발상이 뭔가 실질적인 결과를 가져오진 않더라도 머릿속에서 반짝 하고 작은 폭발이 일어나고 그 자체가 소중하게 여겨졌었다. 그 밖에는 기억해내지 못해 애를 태웠던 경험들이 쌓인 끝에 나중에라도 필요해질 만한 것들은 적어두게 된 것. 그리고 이게 좀 더 발전해서 왠만한 것들은 크거나 작거나 기록을 남겨놓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이건 꽤 도움이 된다. 하지만 뭔가 일이 있을때마다 적어두기 위해 들인 노력만큼의 성과가 있는가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는 좋은 점이 있겠거니 생각했으나 장년에 접어든 지금은 과연 특별히 성과로 이어질지 막연하다. 일에 있어서는 다르다. 확실히 요긴하게 사용된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일에서는 강력한 근거 자료가 되어준다. 그보다 더 값진 것은 쌓여진 기록을 분석해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데이터베이스, 작은 빅데이터가 되는 것이다. 쉬운 예로 업무 절차를 따라 작성해 둔 기록은 직무분석을 가능하게 하고 업무매뉴얼을 만드는것도 가능하게 한다. 신규 인력이 팀에 들어와서도 빠르게 업무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자산이 되는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도 자신의 행동, 생각의 패턴을 분석해서 개선하거나 강화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 10년이 지난 기록을 다시보다보면 당시에 나를 대했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이해하게 되는 지점들이 많다.
왜 안하는가
아무래도 인터넷 때문이 아닐까? 더 정확히는 스마트기기. 언제나 휴대하는 기기로 필요한 정보들은 즉시 검색이 가능하니 굳이 별도로 기록할 필요를 못느끼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있기 전에도 메모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다. 그 비율이 환경의 변화 전후로 바뀌었을 수는 있지만 안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안하는 것일게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메모를 하는 노력보다 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편을 감수하는 쪽이 훨씬 수월해서가 아닐까 한다. 그냥 게으르다는 얘기가 아니라 행동양식, 업무방식을 메모를 하지 않고도 효율적일 수 있게 발달시켰다고 본다. 즉, 기록하지 않고도 일과 생활을 잘 한다는 것이다. 물건들은 모두 제 자리를 갖고 있고 불필요한 것들은 아예 사지 않는다. 조직을 예로 든다면 사람이 그만두고 새로 들어오는 일 자체가 많지 않고, 이사도 가지 않고 복잡하지 않은 업무절차가 큰 변화 없이 오래 유지된다면 필요한 기록의 양 자체가 대폭 줄어들 것이다. 기록을 위해 필요한 과외 업무나 자원의 배정도 마찬가지. 기록을 하더라도 단순한 형태에 핵심적인 내용들만 담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확실히 기록을 열심히 하려고 애쓰는 사이에 여러가지 과도하거나 불필요한 부담이 많이 생겼다. 그리고 그 부담이 너무 커서 일 자체를 미루거나 회피하는 일도 벌어진다. 옥상옥이라는 말도 있다. 메모를 한다 하지 않는다로 구분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 아닌것 같다. 같은 상황에 대해서 기록을 이용하는 정도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로 얘기하는게 더 맞는것 같다.
메모가 갖추어야 할 덕목들에 대한 생각
쓸 데 없는 생각 같지만 기록에 대한 사람들간의 차이에 대한 생각은 기록을 지원하는 여러가지 도구를 만들거나 활용하는 사람들에게 시사해주는 점이 많다. 과다 기록군부터 과소 기록군까지의 스펙트럼이 있다고 생각하고 메모 도구들이 갖추어야 할 주요 덕목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첫째, 기록이 필요한 여러가지 상황에서 모두 편리하게 메모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컴퓨터가 있을때만 사용하기 편하다거나 해서는 결국 기록이 여기저기 분산되는 결과를 낳게 되고 양이 쌓여서 분석할만한 정도가 되었을때 활용에 장애가 될것이다. 둘째, 메모의 생성뿐 아니라 열람이 편리해야 한다. 어디에서 찾을수 있는지가 명확하다면 기록의 활용성을 높일 수 있다. 기록의 양이 늘어나면 결국은 검색 기능이 지원되어야 한다. 요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notion(노션)의 경우 database의 table 같은 형태로 기록을 할 수 있지만 검색 기능이 많이 부족하다. 검색 기능이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에버노트 조차도 자료량이 많아지면 찾기가 어렵다는 불만들이 많다고 한다. 많은 경우에 클라우드 기반의 메모 도구들은 협업 기능을 강조하는데 그 이전에 검색과 열람에 좀 더 집중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네째, 안정성이다. palm pilot에도 꽤 많이 기록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원하는 기기와 어플들이 사라지면서 유실된 부분도 꽤 된다. 내가 생각하는 모바일 메모앱의 요건에 부합하는 도구는 에버노트와 노션인데 요즘 에버노트가 최근 가격을 올리면서 사람들이 떠나고 있는 모습이 보여서 걱정스럽다.